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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집단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의 몇 가지 측면들을 다룬다. 동아리(Affinity Group) 개념을 소개하고 집단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며 합의를 도모하는 의사결정 과정의 원리와 진행과정을 보여준 뒤에 마지막으로 행동에서 요구되는 다양한 역할들을 살펴볼 것이다.

 

들어가며

 

어느 비폭력 운동에서나 제기되는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바로 비폭력 행동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1976년 미국 뉴햄프셔 씨브룩 핵발전소 점거 행동('씨브룩—바일—마르코샤임' 장을 참고하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후 서구의 많은 비폭력 운동 진영들은 비폭력행동의 준비과정에서 만장일치의 의사결정과정을 연계한 동아리 모델을 선호해왔다. 이 장에서는 이 동아리 모델에 대한 설명이 주요하게 다뤄진다.

 

동아리

'동아리'는 5명에서 15명 사이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소집단을 의미한다. 비폭력행동에서 의미하는 동아리는 단지 서로에 대한 친교 뿐만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을 잘 알고 이를 바탕으로 비폭력행동에 참여하는(혹은 참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그룹을 뜻한다. 동아리나 대변인회의(spokes council) 안에서는 상명하달식 의사소통 구조를 지양하고 의사결정 및 조직의 과정에서 동등한 참여를 추구하며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받아 창의적인 직접행동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은 동아리 내의 사람들 모두로부터 도출되며 따라서 탈중심화되고 비(非)위계적인 의사사결정이 가능해진다. 동아리 모델은 1997년 미국 시애틀에서 대규모로 발생했던 반(反)세계화 행동에서 큰 역할을 발휘한 바 있고, 1970년대 초반부터 벌어졌던 유럽과 북미에서의 반(反)핵 시위나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펼쳐진 크고 작은 다양한 비폭력행동들에서 유용하게 활용되어 왔다.

 

누구와 함께 동아리를 구성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 특정 사안에 대해 동일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그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행동 수단에 대해서도 동의를 하는 사람들이 바로 동아리를 함께 구성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미나에서 만난 사람들이거나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거나 같이 사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핵심은 단지 우리를 함께 하게 만든 특정 사안에 대한 입장 이상으로 서로 공유하는 것이 존재하고 또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동아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는 각자가 지향하는 운동관이나 행동에 있어 선호하는 서로의 방식들에 대해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특정 사안이나 행동방식에 대한 토론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예컨대 워크숍에 함께 참여하여 활동과 관련한 트레이닝을 경험해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또는 상대집단이나 경찰의 반대집회, 허위사실유포, 프락치파견 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준비해보는 것도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는 개인과 집단 각각의 수준에서 이 행동/운동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계획된 행동이 실제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은 무엇이 있을지, 반대로 자신이 다른 구성원을 도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지를 논의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행동의 수위나 집중의 정도, 관계의 깊이, 어느 정도의 비폭력을 택할 것인지, 연행에 대한 각오의 수준, 어느 시점에서 행동에서 빠질 것인지, 각자의 정치적인 견해, 행동 방식 등처럼 행동에 있어 기본적인 몇몇 사안들에 대한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집단 내 상호작용 과정들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든 워크숍 내에서든 아니면 한 단체 안에서든 집단 차원의 활동은 사회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측면 중의 하나이며 또한 사회 변혁을 위한 과정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변화를 위한 활동을 수행함에 있어 효과적이고 만족스러우며 민주적인 방식을 계발하고 공유하며 실행에 옮기는 것은 그만큼 중요성을 갖는다.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없애는 것은 민주적인 집단의 특징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모든 틀거리를 없애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상적인 집단은 집단 내의 창의성과 상호 간의 교감이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잘 조율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내면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도 비폭력이 발현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와 같은 목표는 구성원들이 지혜롭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참여하고 협력을 할 때 달성될 수 있다.

 

합의/기본 규칙들

아무리 비공식적이고 구성원 모두가 편하게 참여하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구성원 서로 간의 기본적인 약속들을 만드는 것은 현명한 일이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약속이나 규칙을 만들어 놓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집단 활동을 돕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이미 만들어 놓은 약속들은 논의를 전개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물론 이 약속의 내용들은 추후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맞게 변경될 수도 있다. 그룹 내의 약속은 구성원들이 직접 결정하고 합의를 한다. 약속의 구체적인 예로는 제 시간에 회의 시작하기,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기, 합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하기, 돌아가며 활동을 진행하기,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언 기회를 갖기, 다른 사람 주장을 탓하지 않기, 비밀을 존중하기, 다른 질문을 가로막거나 폄하하지 말기, 말대꾸 안하기, 남에게 특정한 행동을 강요하지 않기 등이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기본적인 규칙들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사회자가 이런 약속들을 먼저 제시한 뒤에 구성원들이 거기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계약'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구성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갖는 것은 늘 중요하다.

위에 예로 제시된 약속 들 중에서 어떤 용어의 의미에 대해 명확한 규정과 합의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비밀성'에 대한 부분이다. 비밀을 지켜준다는 것이 워크숍 과정에서 서로 아무 것도 공유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구성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으면서 대략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서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도 아니면 단지 특정 구성원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애매할 수 있다. 워크숍이 장기적으로 진행되는 경우이거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논의가 과열될 때, 그리고 집단 안에 트레이닝 경험이 적은 사람이 존재한다거나 혹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약속 하나하나의 의미를 규정하고 합의하는 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비폭력의 원칙들' 장을 참고하라).

 

회의 조율

동아리에서는 보통 매 논의 때마다 사회자를 정해서 그 논의가 원래 계획된 방향과 주제에 맞추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한다. 사회자는 구성원들이 보통 돌아가면서 맡는다. 사회자는 논의의 주제들이 정해진 시간 안에 잘 전개될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거나 필요할 때는 새로운 계획이나 결정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사회자는 그룹 전체의 결정을 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룹 내에서의 논의가 앞으로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이런 저런 제안을 하는 사람이다. 이를 통해 사회자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논의에 임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논의나 회의 진행 과정에서는 사회자의 책임감이 그 집단이나 작업에 한정되는 것이지 구성원 개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논의의 진행을 맡은 사람은 논의의 원활한 전개에 신경써야 하는 부담감을 한층 크게 느낄 것이다. 여기서 다뤄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더 많은 논의들은 베릿 레이키가 쓴 글 '모임 조율-왕도는 없다'('Meeting Facilitation—The No-Magic Method', http://www.reclaiming.org/resources/consensus/blakey.html)'나 이 책의 3장 '트레이닝 조직 및 진행의 과제 및 수단들(Tasks and Tools for Organising and Facilitating Trainings)'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룹 미팅에서의 특별한 역할

('Tri-denting It Handbook' 제 3판에서 인용됨, http://tridentploughshares.org/article1072#p26)

그룹 내의 여러 역할들을 돌아가며 맡아보는 것은 그 그룹이 보여주는 특성의 여러가지 측면을 경험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아가 그 그룹의 역동성을 높여준다. 그룹 내에는 회의 진행자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다른 측면에서 그룹 활동이 원활이 굴러가도록 돕는 다양한 역할들이 존재한다. 아래 제시된 특별한 역할들은 큰 그룹에서의 경우이거나 혹은 특정한 주제에 대한 논의과정을 좀 더 효과적으로 만들고자 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 진행자를 돕는 보조진행자
  • 각 구성원들이 논의 과정을 따라가고 공유하는 것을 촉진하기 위해 논의 사항들을 필기하는 사람.
  • 논의 중간중간에 앞으로 남은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

만약 그룹 내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역할을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논의 과정에서 특정 인물들이 논의를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거나 남을 주눅들게 하는 말하는 방식, 기싸움, 인종/젠더/계급/나이에 의한 차별이 존재할 때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하고 환기를 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을 둘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그룹 내 구성원들의 감정선이나 비언어적 소통들(예를 들어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행동들), 집중도와 같은 것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언급을 하고 이를 통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그룹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이 있다.

 

실제 행동의 과정에서의 역할들

동아리 내에서 실제 행동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들이 필요할지를 논의하고 각자가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를 정한다. 여러가지 지원의 역할들은 행동의 성공과 참여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 안내서에 제시된 역할의 예시('행동 준비단계에서부터 행동 이후까지의 역할 분담' 장을 보라)들이 비록 일반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것이긴 하지만 모든 행동에서 교본처럼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것이다. 행동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필요한 역할들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그룹들은 자신들의 행동 과정에서 필요하게 될 역할들을 생각해보고 이 역할들이 행동과정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이 한 가지 이상의 역할을 맡을 수도 있다. 예컨대 경찰폭력 감시자는 구급대원이 될 수도 있고 경찰과 협상을 담당하거나 기자들을 상대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모든 필요한 역할들이 적절하게 잘 배치하여 준비하는 것이며 트레이닝 과정에서 미리 자신이 맡은 역할의 범위와 수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자신이 수행할 수 없는 역할은 담당하지 말아야 한다. (출처: http://www.scotland4peace.org/Peace%20Education/Handout%20Six%20-%20Roles,%20Safety%20and%20Afinity%20Groups.pdf)

 

연습

  • 과제 및 지속: 무엇이 그룹을 움직이는가?: 이 방법은 그룹이 활동을 만드는 데 있어 다양한 역할, 즉 서로 다른 리더쉽 기술들에 대해 빠르고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이를 위해서는 과제/지속의 이론에 대해 상당히 잘 내재화하고 있는 촉진자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사람으로부터의 어떤 지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신속히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촉진자 회의: 이 장에는 촉진자 회의에 관한 정보와 조언이 담겨져 있어 더욱 가치가 있다.

 

의사결정

 

Decision2
Decision2

비폭력운동, 특히나 비폭력(직접)행동의 과정에서는 의사결정과정에 대해 특별히 다룰 필요가 있다. 비폭력은 폭력의 부재 그 이상을 의미한다. 비폭력은 의사결정 방식 그리고 구성원간의 역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집단 내에서 새로운 형태의 지배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과정과 방식에 대한 구성원 모두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은 모든 구성원들의 참여와 의견표출을 독려하며, 합의된 결정을 지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두의 합의에 의해 도출된 결정은 훨씬 더 강력한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은 많은 다양한 그룹 들에서 사용될 수 있고, 특히나 비폭력행동을 준비하고 있는 그룹에서 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1차적으로는 합의과정을 시도해보고 적정한 시간 안에 합의가 안 될 경우에는 투표를 하는 식의 변형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형은 소규모의 동아리에서는 대개 필요하지 않다.

미국의 여성주의 작가이자 비폭력 촉진자인 스타호크( Starhawk)는 1980년대 영국 그린햄커먼에서 있었던 여성평화캠프에 참여하고 나서 문화충격을 받았다. “진행자, 논의주제, 계획, 틀에 맞춘 진행과정 등을 포함하는 우리(미국) 서부연안 스타일의 의사결정방식과는 달리 그녀들의 회의는 어떠한 틀도 없어 보였다. (중략) 나는 형식성에 구애받지 않는 논의 과정 속에서 짜릿하고 달콤한 해방감을 느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 동안 경험해왔던 의사결정과정은 과도하게 통제의 기제들이 사용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중략) 물론 동시에 그린햄 스타일의 의사결정과정에도 몇몇 약점들이 있다. 말보다는 행동을 선호하는 이 그룹은 좀 더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논의과정에서 적절한 조율이 없다보니 자연스레 목소리 큰 여성들이 회의를 장악하게 되고, 두려움이나 걱정 혹은 다른 계획들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각각의 그룹은 자신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에 잘 들어맞는 의사결정과정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치밀한 계획과 예측불가능한 것들 사이의 균형, 공식적인 회의와 좀 더 자유로운 수다 사이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은 그룹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변화를 가져다 준다. 어느 누구도 그 자신이 모든 그룹에서 활동할 수는 없다.” (Starhawk, Truth or Dare : Encounters with Power, Authority and Mystery. [Harper Collins 1987]).

계속해서 제시될 내용들은 대부분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에 관한 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스타호크가 지적한, 합의도출과정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상황들을 짚고 넘어가보자 : 1) 구성원들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없을 때(예, 구성원들이 성원들 간의 유대감보다는 개인적인 욕구들을 더 중요시 여길 때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2)좋은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때(예, 총살과 사형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할 때), 3) 공권력과 대치상황에서 무언가 터지기 직전일 때(이 때는 임시적인 리더 한 명이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게 현명한 처사일 수 있다), 4) 논의 주제가 사소한 것일 때('동전 던지기'로 해결할 수 있을 때), 5) 논의를 위한 충분한 배경정보를 갖고 있지 않을 때.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은 하나의 과정이다

'합의'는 그룹 성원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집단 의사결정과정이다. 이는 경청과 존중,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합의의 목적은 모두의 이의가 없고 최종적으로 도출된 내용에 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다. 모두로부터의 이의가 없다는 것이 최종 결과물에 대해 모든 사람들의 완벽하게 만족하거나 동의를 했다는 것을 꼭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완벽한 만족이나 만장일치는 드물게 이루어진다.

다수결은 그룹 내에서의 기싸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룹의 결정을 존중하려기 보다는 다수의 결정과 경쟁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때 성원들은 자신의 영특한 두뇌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에 활용을 한다. 이에 반해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그룹 내의 창의성, 통찰력, 경험, 다양한 관점들이 뒤섞여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더 깊은 질문과 지혜를 자극한다.

자, 그렇다면 상호협력적인 의사결정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 이 과정에서는 모든 성원들의 의견, 생각, 입장에 대한 보류 같은 것들이 모두 경청되고 논의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생각들이 결정에 반영된다. 이와 같은 열린 논의 과정은 성원들이 참여하게 될 비폭력행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합의들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토대가 된다.

구성원 각각이 공통된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해 몰두한다는 점에서 '합의'는 매우 역동적이다. 한편으론 매우 힘든 작업일 수 있는데, '내 생각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는 각자의 생각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과정은 더 나은 결정을 도울 뿐 아니라,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유대감도 강화하는 기제가 된다. '합의'는 단순한 투표가 아니라 계속해서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합의에 대한 입장들

우리의 목표가 만장일치의 결정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기에 합의과정에서는 제안에 완벽하게는 동의하지 못하는 성원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만 한다. 자신이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나 반대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집단 전체가 고려를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구성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결정을 지지할 것이다. 만약 특정한 제안에 대해 기계적인 찬성과 반대 혹은 기권의 의사밖에 표출될 수 없다면 그 의사결정과정은 이상적인 합의과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의사결정과정에서는 다음처럼 크게 다섯 가지의 입장들이 존재할 수 있다.

  • 완전한 동의
  • 약간의 의문은 들지만 결정에 지지는 할 수 있는. (지지)
  • 상당한 의문이 들지만 결정을 받아들 일 수는 있는. (수용)
  • 반대하지만 함께 할수는 있는. (관용)
  • 결코 함께 할 수 없으며 그룹이 이 결정을 실행하는 것도 가로막을 것임.

만약 많은 성원들이 지지하지 않거나 혹은 수용하지 않거나 심지어 완전한 반대를 한다면, 그 합의의 의미는 반감될 것이며 행동의 결과 역시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간에 집단 구성원들이 자신이 주저스러운 부분이나 반대하는 지점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견을 표출하는 것은 원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한다거나 혹은 특정한 부분에 대한 의미를 재확인하고 명확히 물어보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동시에 완전한 찬성의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논의 과정에서 자신이 입장이 위에 제시된 나머지 네 가지의 입장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점검해야 한다.

때로는 한 개인이 강한 반대나 이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한편으론 다른 대부분의 멤버들이 지지하는 결정에 함꼐 참여하고 동의하는 일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것도 의사결정과정에서 요구되는 중요한 측면 중의 하나이다. 반대의견을 표명하는 것과 의사결정과정 자체를 방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이다. 이견을 표출하는 것 또한 논의과정의 일부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합의에 반대하는 것

합의를 가로막는 한 개인의 의견은 결코 가볍게 치부되어선 안 된다. 만약 대다수의 동의를 얻은 한 결정을 어느 누군가가 가로막는다면, 그/녀는 지금 자신이 그 결정이 틀린 결정이라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그 결정된 사항이 앞으로 진행되는 것도 막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논의의 결과 하나의 공통된 합의에 도달했는데 어느 한 사람이 혹은 몇몇 사람들이 강한 반대를 하며 그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했다면, 이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 중 하나를 가진 사람들이다.

  • 이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거나 비윤리적이거나 비인간적인 결정이다. 어찌됐든 난 이 결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이 결정이 앞으로 실행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막아서기)
  • 난 이 결정에 철저히 반대를 하는 입장이고, 더 이상 이 그룹과 함께 활동할 수가 없다. (그룹 탈퇴)

만약 강한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반대하는 결정을 이제 가로막기로 결심을 했다면, 이 때 중요한 것은 조심스럽고 명확하게 자신의 반대 이유와 결정을 가로막고자 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 실제론 이와 같은 반대의사 표명의 경우에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른 제안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왜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들과 자신 사이의 이견이 되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서이든 이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반대논리나 걱정이 되는 부분을 재검토 해보고 이를 통해 자신이 한발짝 물러서서 다만 반대만 할 뿐 집단이 계속해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는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논의 내용을 기록하기

합의가 이뤄진 뒤에는 '완전한 동의'의 입장을 취하지 않았던 구성원들의 걱정이나 꺼려지는 부분 혹은 반대하는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 논의되는 그들의 의견을 속기록에 적어 놓는 것은 그 그룹이 집단 내 존재하는 다양한 의견들을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후 계속될 논의과정에서 구성원 전체가 이견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소수의 의견들을 진지하게 잘 반영하는 것은 이후 있을 행동들에서 구성원간의 접속력을 높일 수 있다.

 

합의에 도달하는 것이 힘든 경우

집단 내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결정을 내리기 위한 충분한 정보들이 없어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논의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결정을 연기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두들 새로운 제안이 나오길 기다리는 것일까? 그럼 소규모의 위원회라도 꾸려서 거기서 몇가지 대안들을 구상해보는 것이 나을까?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들

그간의 많은 활동들은 합의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방식과 틀거리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몇 가지 중요한 조건들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 공통의 목표와 관심: 한 그룹 안의 구성원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표나 공통된 관심을 공유하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행동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자치나 마을정화에 관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그룹의 대략적인 목표를 명확히 규정하고 적어놓는 것은 매우 유용할 것이다. 합의의 과정에서 논의가 봉착에 빠졌을 때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구성원들이 공유했던 그룹의 목표를 상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은 공통의 목표나 관심을 우선적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성원들의 참여과 인내, 의지를 필요로 한다.
  • 합의도출 과정에서의 참여: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참여의욕들이 높을 수록 더 나은 결정이 도출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다수결로 해결할 것을 제안한다거나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어"라는 식의 찬물을 끼얹는 발언들은 의사결정과정을 매우 어렵게 만들 것이다.
  • 충분한 시간 : 이와 같은 의사결정과정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질수록 의사결정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만약 집단 안에서 서로 갈리는 입장들이 발생한다면 이는 자연스레 더 긴 논의시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 명확한 논의과정과 원칙설정 : 특정한 논의 주제가 제기되었을 때에는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규정해 놓자.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본 회의 시작 전에 합의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한 명 혹은 그 이상의 진행자들을 지정해 놓는 방법을 사용한다.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

  • 논의에서 다뤄질 주제들이 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에 대해 결정할 것인지도 명확하게 공유가 되어야 한다.
  •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 서로의 동의 하에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발언 기회나 발언 시간을 제한하는 규칙을 둘 수도 있다. 이는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한 기회를 가지고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 논의과정은 적극적인 경청과 내용의 공유과정을 포함한다. 반복해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이나 정보들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한다.
  •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의 목소리에 대해서 단지 듣고 끝낼 것이 아니라 논의과정에서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논의과정에서 서로의 견해 차들이 잘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회의 진행자는 논의 과정에서 동의의 지점들과 이견이 발생하는 지점들을 명확히 규정을 해줌으로써 성원들의 좀 더 진전된 논의를 도울 것이다.
  • 진행자는 논의 사이사이에 그간의 논의내용들을 정리하고 환기시킴으로써 논의를 효과적으로 지속시킬 수 있다. 이는 중간중간에 다른 의견은 없는지 물어본다거나 구성원들이 현재 어느 입장들에 서있는지는 확인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 논의에서 제기된 아이디어들과 방안들은 그룹 전체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논의를 통해 도출된 결정은 그룹 전체에 속하는 것이므로 성원들은 책임을 나눠가질 필요가 있다.

 

합의도출의 실제적인 단계

 

합의를 통한 의사결정에는 수많은 모델들이 있다(오른쪽 순서도 참조). 다음에 제시된 기본적인 절차들은 평화활동가들을 위한 매거진 <평화뉴스>(1988년 6월호, www.peacenews.info)에서 빌려온 것이다.

1. 우리가 결정하게 될 사안이나 특정한 문제는 명확히 정의되고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는 논의과정에서 다뤄지는 문제나질문들이 다른 사안과 섞이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다. 2. 가능한 결정 혹은 대안들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해보자. 이 때 나오는 얘기들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모두 다 받아 적어 놓자. 떠오르는 생각들은 바로바로 내뱉자. 3. 질문이나 명확한 의미규정의 여지들을 늘 남겨놓자. 4. 브레인스토밍에서 나온 다양한 선택지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면서 지울 것은 지우고 수정할 것은 수정을 해서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어떤 것들이 마음에 드는지를 생각해보면서 말이다. 5. 선택된 제안(들)을 받아적어서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 (때로는 소규모로 모둠을 분화해서 각각의 모둠이 하나의 제안씩을 명확하고 간결하게 적는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 6. 각각의 제안들에 대해 찬반지점들을 논의해보고, 구성원 각각이 어떤 제안에서든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 7. 만약 큰 반대의견이 있을 경우 6번 단계로 돌아가자.(이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4번 단계로 돌아가야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8. 큰 반대의견이 없다면 이제 채택된 제안들에 대한 동의를 묻는 과정을 갖는다. 9. 작은 반대의견들을 존중하고 이를 반영하여 수정안을 만든다. 10. 계속되는 논의. 11. 최종적인 합의 여부 체크.

특히나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의사결정의 경우에는 논의 중간중간에 쟁점에 대한 각 성원들의 입장을 확인하는 간단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이는 성원들의 최종적인 견해를 묻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금 현재 어느 입장에 서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손가락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다. 예컨대 손가락 다섯 개는 완전한 동의, 네 개는 '지지', 세 개는 '수용', 두 개는 '관용', 한 개는 반대 그리고 주먹을 쥐는 것은 반대를 넘어 이 제안을 막아설 것을 의미하는 식으로 말이다. (합의 도출과정에 대한 연습을 위해서는 '의사결정' 장을 참조하라)

 

집단들 사이에서의 의사결정: 대변인회의

위에 제시된 의사결정모델은 한 그룹 안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규모가 큰 비폭력행동의 경우 여러 동아리 사이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한 가지 방법은 바로 대변인회의를 갖는 것이다. 동아리.

 

대변인회의는 여러 그룹들이 서로 모여 함께 결정을 만들고자 할 때 활용될 수 있다. 대변인회의에서는 각 집단에서 파견된 대변인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합의를 도모한다. 각각의 그룹은 그들이 파견한 '대변인'을 통해서 의사를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대변인의 능력은 그/녀가 속한 그룹의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 특정 사안에 대한 논의나 결정이 이루어기 전에는 대변인이 그룹 멤버들과 함께 논의를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대변인회의를 활용하는 의사결정의 대략적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주의: 1단계와 2단계는 각각의 동아리 안에서도 미리 이루어질 수 있다)

1. 전체 그룹 (각 동아리의 모든 구성원들): 논의주제를 소개하고 필요한 모든 정보를 공유한다. 2. 대변인회의와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설명을 한다. 3. 소그룹(동아리)을 구성한다. 이 과정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랜덤으로 짤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동아리를 그대로 가져갈 수도 있다. 혹은 각자가 사는 지역이나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4. 소규모 그룹 안에서 사안에 대해 논의를 시작한다. 아이디어를 모으고 찬반의견을 표시하는 과정을 거친 뒤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제안을 도출해낸다. 5. 각각의 동아리에서는 대변인(대변인회의에서 그룹의 의견을 전달할 사람)를 한 명 정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동아리는 대변인이 양 쪽의 논의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만 할 것인지 아니면 대변인회의에서 자신의 그룹과 관련한 결정권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한다. 6. 각 동아리의 대변인들이 모두 모인다. 각 대변인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이 속한 그룹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논의를 통해 각 그룹의 제안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디어로 통합한다. 이 과정에서 대변인들은 중간에 잠시 회의를 멈추고 자신의 그룹 성원들에게 돌아가 특정한 문구나 표현의 명확한 의미를 확인하거나 수정된 제안을 보고한 뒤 그에 대한 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변인회의에서 각 대변인들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으며 자신이 속한 그룹의 의견만을 말할 수 있다. 7. 대변인회의에서 일단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가능한 대안들이 제안이 되면 대변인들은 그 제안을 들고 자신의 그룹으로 돌아가 다시 논의를 진행한다. 구성원들은 그 제안에 대해 찬반의 의견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수정안을 제시할 수도 있다. 8. 대변인들은 다시 대변인회의에 모여 각각의 그룹에서 논의된 내용을 확인한다. 만약 어느 한 그룹에서라도 원 제안에 반대를 했다면 앞서의 논의과정들을 다시 반복한다. 즉, 소그룹회의와 대변인회의를 왔다갔다 하는 것이다. 9. 소그룹에서는 대변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교체하면서 다른 성원들에게도 대변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도 있다. (대변인회의의 활용에 관한 연습을 위해서는 '의사결정' 장을 보라.)

 

실습 자료들 출처

 

기존 사례들이 주는 교훈

지난 30여년간 '동아리 모델'과 '합의적 의사결정 과정'은 1970년대의 핵발전소 반대 운동이나(씨브룩, 뉴 햄프셔, 미국, 스코틀랜드), 1980-90년대 독일에서 펼쳐졌던 원자력 반대 및 무장해제 운동, 1999년 미국 씨애틀과 워싱턴에서 있었던 반세계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비폭력행동들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동아리/대변인회의/합의적 의사결정'이 활용된 몇몇 대규모 비폭력행동에서는 참여자들의 숫자가 2,000명 혹은 그 이상을 넘어선 적도 있었다. (1996년 미국 씨브룩에서의 경우나 1997년 독일 웬드랜드에서 있었던 핵폐기물 수송 반대운동의 사례, http://www.castor.de/diskus/gruppen/x1000mal/5rundbri.html#Auswertung%20des%20SprechenInnenrates를 보라). 이와 같은 많은 사례들은 그간의 주류적이던 정치적인 환경이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즉, 비폭력 행동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탈권력, 탈중심적인 운동방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대규모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동을 조직하고자 하는 집단에게는 앞서 제시된 비폭력행동의 사례들이 좋은 본보기 역할을 할 것이다.

장기간에 걸쳐 활동을 하는 동아리는 별로 흔치 않다. 독일 반핵운동인 '함께하는 수천의 사람들(X-thousands in the way)'의 예를 보면 이 운동에서 장기간에 걸쳐 존재하는 동아리는 거의 없다. 물론 몇몇 그룹은 여전히 존재하면서 주요한 역할들을 담담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이 운동에 개인적으로 참여하거나 아니면 행사 현장에 도착하여 그 자리에서 동아리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서로 친분을 트고 하나의 새로운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행동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해지기까지는 단지 하루나 이틀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심지어 이 새로운 커뮤니티는 단지 예전부터 이 운동에 열심히 발을 담그고 있던 활동가들에 새로운 얼굴들이 몇 명 더 추가된 정도일 때가 많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특별한 준비 없이 즉각적으로 참여를 하게 되며, 비폭력행동의 준비 과정은 이러한 배경들이 행동의 제약요소로 작동하지 않게끔 설계되어야 한다. (요켄 슈타이(Jochen Stay), '대규모 시민불복종을 위한 전제조건과 사회-정치적 요소들', 부러진총(The Broken Rifle) 제69호, 2006년 3월: http://wri-irg.org/pdf/br69-en.pdf). 새로운 활동가들의 참여를 독려하고자 하는 것이 행사의 목적 중의 하나일 때 앞서의 모델은 효과적이다. 이 때 준비되는 행동은 대개는 위험도가 높지 않으며 대중적으로 홍보가 이루어진 행동이다.

또 다른 옵션은 각각의 소규모 동아리들이 각자 행동을 계획한 뒤에 동시다발적으로 실행을 하는 컨셉의 대규모 행동이다. 이 때의 '대규모' 행동은 서로 다른 그룹들이 이곳 저곳에서 각자 행동을 펼치면서 전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모델은 위험부담이 높은 행동의 경우나 공권력의 비교적 강력한 대응이 예상되는 경우 적합하다.

그 동안 다양한 운동에서 '동아리/대변인회의' 모델이 효과를 거둔 성공적인 사례들이 많긴 하지만 아직 더 계발되어야 할 부분도 많이 남아있다. 아직 이 모델을 경험해보지 못한 그룹들은 향후에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인원, 그룹이 참여하는 운동에서도 이 모델을 수행해보고 그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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